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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작포폴

소란, 샘의 노래

by StudioM3 2025. 4. 28.

 

아득히 먼 옛날, 세상은 고요했으나 생명은 잠들어 있었다. 산은 숨을 죽이고, 강은 얼어 있었으며, 하늘은 차가운 빛만을 비췄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 깊은 곳에서 한 선녀가 내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소란(素蘭). 달빛을 짓는 신들의 무리 속에서도, 유독 마음이 따뜻하던 이였다. 소란은 하늘의 금기를 어기고, 인간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녀가 발을 디딘 곳은, 대나무가 하늘 끝까지 치솟은 깊은 숲. 숲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샘이 있었다. 맑디맑은 물이지만, 아무런 빛도 담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샘. 소란은 조심스럽게 샘 속에 손을 담갔다. 그녀의 손끝에서 빛이 퍼졌고, 샘물은 부드러운 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옷자락이 스치자, 물결은 소리 없이 춤추었다.  소란은 매일 밤 샘가에 섰다. 손끝으로 물을 휘저으며, 아직 깨어나지 못한 세상의 노래를 불렀다. 달빛과 바람, 샘물과 대지가 그 노래에 응답했다. 그리고 마침내,숲은 깨어났다.

 

서늘하고 침묵하던 대나무들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빛을 품었고, 땅은 색을 되찾아 격렬한 생명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샘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산을 넘어 흐르고, 물결치는 대지 위로 나뭇잎들은 불꽃처럼 흩날렸다. 하지만, 세상은 이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다. 이 광휘는 오직 순간이었다. 깨어난 세계는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고, 숲은 기억을 품은 채 고요히 숨을 감췄다.

 

사람들은 가끔, 안개 낀 밤 대나무 숲을 지나며 말했다. "어디선가 물방울 소리와 여인의 노래가 들린다"고. 아무도 그 샘을 찾지 못했지만, 전설은 남았다. 깊은 숲 어딘가, 세상을 일깨운 천상의 여인이 샘가에 서 있다는 이야기. 그녀는 여전히, 손끝으로 물을 휘저으며 세상이 잊은 오래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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